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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

불면증, 무기력증의 나날들.txt 며칠 간 비가 내렸다. 뜨거운 햇빛이 빗 속으로 사라지고 온종일 울던 매미들도 자취를 감춘 날. 불면증과 무기력증으로 인해 동공은 초점을 잃어 간다. 분명 나는 나로 존재하는데 이런 날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조증과 울증의 교차. 다행스럽게도 그의 말로는 내가 조울증은 아니라고 했다. 조울증이라기 보다는 조증에 가까운 정도. 그래도 가끔 찾아드는 이 기분 나쁜 무기력증. 벗어나고 싶다. 무기력증을 벗어 나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건조대 위에 바싹 마른 빨래를 갠다던지 주인에게 버려진 방을 치운다던지 그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분류한다던지 며칠 전 처럼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던지 일단 저녁 밥 부터 먹어야지. 라며... 라임은 맞춰야지. 2015. 8. 18.
유월 마지막 월요일.txt 오늘은 유월의 마지막 월요일. 벌써 14년의 허리께나 와있다. 뽑아낼 사진들을 고르고 밀린 빨래 뭉텅이를 마구 둘러걸치고 지하 세탁실로 갔다. 어두운 세탁실은 늘 축축하고 고요했다. 어디 구석 모퉁이에서 바퀴벌레가 나를 지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시리 섬뜩해진 나는 빨래를 넣고 세탁실 계단을 올라왔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달력을 본다. 이번 달은 쉴틈 없이 살았다고 생각하며 그런데도 내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 허탈해하고 있다. 나름 착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대학생 때는 일주일에 아르바이트를 과하게는 세 개씩 뛰며 기숙사비, 월세, 식비, 생활비를 벌어 썼다. 그러다 어느 해 가을이었나 가족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하대서 저금해 둔 모든 돈을 주고 나니 내겐 남은 게 없었다. 어린 .. 2015. 8. 18.
사라진 기억.txt 지난 주말 고향에 내려갔다가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예정에 없었던 만남이라 우리는 아주 오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안부 인사 부터 직장 생활 이야기, 연애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그런데 이상한 게 이 아이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만나도 막상 만나면 어제 만났다가 오늘 만난 듯한 느낌이다. 학교 다닐 때는 내가 이 친구를 많이 동경해와서 흔한 친구와의 우정과는 무언가 다른 그것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암튼 우리는 그 날 만났다. 1시에 보기로 했는데 조금 늦는다며 근처 올리브영에 가있어라고 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있었다. 음...딱히 필요한 물건도 눈에 가는 물건도 없었기에 어색하게 통로를 기웃기웃하다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괜시리 뻘쭘해서 눈웃음을 지으.. 2015. 8. 18.
연애 상담 해주는 남자.txt 스물 다섯. 그리 적은 나이도 아니고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 스물 다섯. 이런 저런 사람들과 알고 지내다 보니 이런 저런 얘기들도 자연 많이 하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떠오르는 주제는 연애에 관한 것. 대화의 상대방들은 내게 연애 상담을 요청 해온다. 그럴때면 난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상담을 해주곤했다. 20대 초반 부터 30대 초반의 남녀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또 닮은 구석이 있었다. 연애상담을 여러번 해주다 보니 이런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끔은 내 연애에도 접목시켜 보곤 했는데 음. 뭐랄까.. 제 3자일 때에는 보이던 것들이 1인칭 시점이 되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지인들에게 연애 상담을 요청하곤 했는데 지나고 보면 술자리의 안주.. 2015. 8. 18.
이상형.txt 일정이 꼬여서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오후. 비는 올 듯 말 듯 오지 않고 괜한 먹구름만 떠 있는 하늘. 이런 날 이런 기분인 채 있는 것은 정말 싫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길래 엎드려 있었더니 엎드린 등 위로 잠이 올라 탄다. 지금 자봤자 언제 일어나겠냐 싶어 혼자서라도 화풀이할 겸 로그인을 했으나 딱히.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감정들이 수채구멍에 막히 머리카락들 처럼 얽히고 섥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지금이다. 그냥 분노는 이쯤에서 접어 두고 현실도피를 하는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란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이상형. 이상형을 그려보기. 음. 지금 상황에선 종이에 그릴 수 없으니 머리에 그려 본다. 츤데레인. 담배 안 피는. 쌍꺼풀이 없는. 사진을 잘 찍는. 넓은 어깨를 가진. 웃는 모습이 .. 2015. 8. 18.
이팝나무 꽃 피던 밤.txt 어쩌다보니 술을 마셔 취기가 오르던 밤. 소주를 마시면 이상하게 혀에서 토마토향이 비릿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도 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숨을 내쉬면 입김처럼 피어오르던 소주 냄새. 비틀비틀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그녀는 앞서 걷고 그는 그녀 뒤에 두발짝 물러서 걸었다. 5월의 봄바람이 둘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에 하얗게 핀 이팝나무 꽃들이 낭창낭창하게 흔들거렸다. 술기운도 봄기운도 바람을 타고 짙어졌다. 2015. 8. 18.
부러진 안경.txt 1. 그냥그냥 지루하게 흘러가던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의 1학기 혹은 2학기의 이야기. 그 날도 여느 때와 별다른게 없었던 하루였다. 수업을 마치고 미술실 청소를 하고 방과 후의 동아리 모임.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들떠 있었고 그 여학생은 그런 아이들을 지켜 볼 뿐이었다. 그러다 교실 문이 열렸다. 한 남학생이 회의 시간에 늦었는지 서둘러 와서 빈자리에 앉았다. 남학생은 먼저 온 친구들에게 부러진 안경 이야기를 했다. 그의 친구들은 왜 그랬냐며 시끌벅쩍했다. 그 때, 조용히 앉아있던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말했다. "내가 안 쓰는 안경 줄까? 필요하면 말해." 그러자 그 남학생이 끄덕이며 말했다. "네, 선배." 잠시 여학생은 머뭇거리더니 다시 남학생에게 물었다. "테가 핑크색인데 괜찮아?" 그 말을 .. 2015. 8. 18.
눈물 한 방울.txt 오늘 수업을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화요일 6시 40분에 만나는 아이는 말괄량이 초등학생이다. 그 친구는 수업 시간 마다 딴 소리를 많이해서 좀처럼 정해진 그 시간에 딱 끝나는 적이 없다. 오늘도 불안불안해 하면서 수업에 임했다. 지난 주 숙제를 검사한다고 보니까 논술숙제는 해뒀고 수학숙제는 그렇지 않았다. 별표로 남겨둔 수학 숙제 페이지가 거짓말처럼 새하얗게 웃고 있었다. 안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예 하나하나 같이 보기로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평소와는 다른 침묵이 흘렀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아이의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 한 방울을 보았다. 그 반짝이는 눈물이 책상으로 투욱- 하고 떨어졌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아이에게 물어보았지만 .. 2015. 8. 18.
수요일 저녁 7시 30분.txt 수요일 마지막 수업은 재밌기도 하지만 솔직히 벅차기도 한 수업이다. 7시 30분에 수업하는 이 친구는 일부러 수업시간을 길어지도록 한다. 글씨를 쓰자고 하면 항상 외곽선을 그리고 받아쓰기를 하면 아는 글자도 모르는 척하며 나보고 발음을 해달라면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는 친구다. 오늘은 수업시간에 자기가 태권도 학원에서 뒷차기를 배워왔다며 벌떡 일어서더니 나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는데...엉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피식-웃었다. 편두통 때문에 표정이 밝지는 않았는데 덕분에 웃었다. 웃게 해줘서 고맙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역시나 오늘도 다이나믹한 수업시간이 되었다. ...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님과의 학습상담에서 어머님이 내게 윙크를 하시며 아이에게 말씀하셨다. "너 자꾸 까불면 선생님 안 오신.. 201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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