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never rains but it pours.txt
It never rains but it pours.
오늘 같은 날이 참 그렇다.
그러다 저녁 쯤.
까만 휴대폰 액정에 메세지가 깜빡였다.
-가족 구성원 간의 불화
가족으로부터 온 메세지.
소유와 보상심리, 욕심일수도 있는 소망 혹은 집착.
결속이 지나친 가정환경.
그런 이미지들이 그려졌다.
인간은 가족이란 단위 아래에 종속되어야만하는가.
난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개개인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태어남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느 누구의 통제 아래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현실은 소름끼치도록 냉혹하다.
'레미제라블', '설국열차', '인터스텔라'와 '카트' 등등의 영화에서 부터
'송곳', '미생'등과 같은 웹툰에서 조차 갑과 을은 존재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에서 나열한 것들은 어떻게 보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예술 작품으로
약간은 극적으로 포장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이러저러한 미사여구 다 집어치우고
지금 당장 티비를 켜 뉴스를 보자.
'현대판 노예, 경비원의 죽음'이나 '성추행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여직원',
'군대 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일병' 외에 지금도 누군가 모르는 사이에 죽어가고 있을 사람들.
계급사회와 물질만능주의가 이루어낸 갑과 을의 논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다.
GDP 순위가 올라가고 FTA를 체결하는 국가의 수가 늘어날수록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얘기를 나랏님들 얘기라고 넘겨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말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는 망할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 정치인을 누가 뽑느냐는 말이다. 바로 국민이 뽑는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은 대표의 자질이나 됨됨이 보다는 소속당만 보고
몰아주기 식으로 표를 던진다.
이런 게 몇십년 동안 되풀이되니 나라가 변할리가...;;
국가가 바뀌려면 국민이 바뀌어야한다.
이건 레알참트루.
덧붙여 말로만 내적인 것을 중시한다고 립서비스 하지 말고
제발 내적인 것을 1초라도 흘겨 보기라도 좀 했으면 싶다.
진실은 버려둔 채 가십거리로 침 튀기기에만 바쁜 사람들.
영양가 없다.
가족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가족간의 결속은 실로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라 하였다.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난 항상 이 얘기를 하지만
우선 대화 자체가 안되므로 패스.
그래서 그런지 바뀌는 게 없는 것 같기도.
아무튼
가깝다고 막 대해서는 안된다.
가까울수록 서로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거의 1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
위에서 언급한 주제로 대화를 했을 때,
가족간의 불화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다들 살기 고달프구나 싶었다.
(불쌍한 이십대 청춘들 토닥토닥.)
그리고 마지막.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의 죽음에 대하여.
사실 나는 아직 가까운 지인들에게서 듣는 죽음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이 생소하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죽음'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부터 목이 메이고
눈물샘에서 액체가 마구 뿜어져 나온다.
감정과잉으로 인한 행동 같다.
몇년 전, 실제로 이런 일이 있어 주의를 받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 자체가
참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나처럼 하나하나 신경 쓰는 사람도 드물긴 하다.
다들 살기 바쁘니 선후배의 소식이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위로의 말을 하려니
우리 사이가 그 정도의 사이인가 싶기도 하고.
만약 위로의 말을 한다면 어떻게 부터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런데 오늘,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다.
난 위로의 말을 하려다 너무 놀란 나머지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미친 것 같다.
다시 전화해서 얘길 했다.
감정을 절제하면서 얘길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내게 몸 관리 잘하고 있으라 했다.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괜히 미안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얽히고 설켜
눈에 맺혔다.